DCEU 영화 중에 히어로 영화 다운 영화가 드디어 나왔다.
[원더우먼]을 제외한 DCEU의 영화들은 흥행 및 재미와 별개로 영화로서의 스토리텔링이 지극히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경쟁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해져버린…)인 MCU의 영화들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진행을 볼 수 있다.
경쟁사 같은 느낌은 이제 더 이상 없고, 넘사벽이 되어버린 MCU
1. 각 히어로 단독 영화로 시작하며 초반의 작품들은 전형적인 영웅물의 구조를 가짐
2. 이 과정에서 다른 히어로들을 쿠키 정도로만 등장시켜 서로 관련이 있다는 정도만 보여줌
3. [어벤저스]를 포함한 일부 영화에서만 여러 히어로의 콜라보를 보여줌
하지만, DCEU는 달랐다.
이전 다섯 편의 영화 중 무려 세 편이 팀업 무비였다.
[맨 오브 스틸]에서 이미 배트맨 떡밥을 온 사방에 깔아뒀다는 점을 볼 때, 순수한 단편 영화는 [원더우먼]이 유일했다.
그나마 단독 영화 두 편은 서사구조나 제대로 갖추고 있었지, 나머지 세 편은 그런거 다 찜쪄먹은 구조의 영화들이었다.
애초에 캐릭터 빌딩은 거의 이루어지 않은 상태에서 팀업을 하려니 모든 구조는 허약했다.
게다가, 원작에서 반드시 살려야 할 코드는 산산히 부숴버려서 대체 뭘 위해 이걸 만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더우먼 핵심 코드 "사랑"의 상징이 되어야 하나 등장 즉시 퇴장해버린[…]
감초 역할 지미 올슨은 CIA 커버 요원으로 등장과 동시에 머리가 날아가고, 원더우먼의 유일한 사랑 스티브 트레버는 사망처리해버린다.
비밀 신분(Secret Identity)이 중요한 세상인데, 렉스는 모든 신분 정보를 서버에 저장해뒀고, 이걸 해킹한 배트맨은 모든 정보를 다 빼냈다.
수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는 이유는 고작 "설치치 마라"이고, 화해하는 이유는 고작 "느검마도 마사"[각주:1]다.
심지어는 수퍼맨이 죽자마자 클라크 켄트의 부고 기사가 신문을 장식한다.
빌런 쪽도 이건 마찬가지다.
천하의 나쁜 새끼들을 더 나쁜 정부 요원이 사악하게 컨트롤해야 할 모 캐릭터들은 그냥 의리가 넘치는 멋진 놈들일 뿐이다.
렉스 루터는 이게 렉스인지 조커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드디어 원작의 코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히어로물이 DCEU에서 나온 것이다.
영화는 대단히 정석적인 히어로물의 코드를 가져간다.
적절한 출생의 비밀로 시작해서, 본인이 원하지 않게 모험에 끌려가고, 끝내 본인이 원하던 것 이상을 얻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혼자 힘으로 달성해야 할 퀘스트도 완결한다.
심지어 비주얼도 오랜만에 짱짱한 DCEU 영화가 나왔다.
덕분에 영화는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고, 일단은 재미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그리 깔끔한 그림은 아니다.
1. 영웅서사 구조에 끼워맞추다 말아버린 흐름
이 영화는 전형적인 영웅서사 구조의 영화다.
그런데, 거기에 끼워맞추다 얼버무린 느낌이 종종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카라덴과 혼자 싸우는 장면은 반드시 혼자서 퀘스트를 수행해야 한다는 구조에 끼워맞추려고 넣은 것이다.
그런데, 정작 옆에는 피지컬이 강력한 조력자가 둘이나 있는데, 그 조력자 중 하나가 "이건 반드시 혼자서 해야 해"라고 대사를 친다…
설명충이냐…
이런 건 어쩔 수 없이 조력자들이 도와주지 못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거 수많은 영화들에서 다 보여줬잖아…
또, 오로지 그 병으로만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그곳에는, 수많은 도전자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심지어 그곳에서 조력자가 이 모든 내용을 설명까지 해준다…
2. 다른 영화들에서 너무 많이 가져온 흔적들
아틀란티스의 풍경은 [토르]의 아스가르드를 신경쓴 흔적이 역력하고, 옴과의 대결은 [블랙 팬서]의 대결처럼 왜 싸우는지 잘 모르겠다.
아서와 메라의 모험 여행은 [인디아나 존스]나 [미션 임파서블]에서 많이 본 느낌이다.
블랙 만타는 누가 봐도 [아이언맨]을 그대로 가져왔다.
물론, 그 영화들이 모두 영웅 서사 구조에서 플롯을 따온 훌륭한 영화들이긴 하지만, 이게 너무 과잉이라는 게 문제다.
3. 감독의 특기인 호러와의 콜라보도 2% 부족함
잘 알려져있다시피 제임스 완 감독의 특기는 호러다.
이 점을 명백히 보여주는 게 트렌치 씬이다.
그런데, 트렌치 씬은 앞 부분만 호러 코드이고, 정작 바다 속에 뛰어든 다음은 흐지부지하게 정리되어 버린다.
이게 더 연결되는 게 아니라 "알고 보니 그 분도 트렌치 정도는 뚫고 나오심"의 소재로밖에 사용되지 않아 허무해져버린다.
어쨌건, DCEU 영화 중에선 오랜 만에 그닥 나쁘지 않은 평을 들으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DCEU 영화 중에선 최고의 영화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부디, 이 영화를 발판 삼아 앞으로의 DCEU 영화들은 좀 재미있게 나왔으면 좋겠다.
덧1. 이 영화에서 아쿠아맨 및 메라는 전작 [저스티스 리그]의 그 배우들이고, 시점도 [저스티스 리그] 이후임.
그런데, 현재 "배트맨" 벤 애플렉은 알콜 중독 치료 2회차를 달렸으며, "수퍼맨" 단독 차기 영화는 요원한 상태임.
대체 DCEU의 워너는 생각이란 걸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음.
덧2. 잠수함을 터는 해적 씬은 너무 오버 테크놀로지라서 여러모로 당황스러움.
게다가, 잠수함이 아틀란티스를 공격하는 씬은 여러모로 황당무계[각주:2]한데…
현재 지구상 어떠한 해군의 무기체계도 수중 시설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를 탑재하고 있지 않음.
덧3. 트렌치 씬은 분명히 공포 코드를 집어넣으려 만들었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그런 바다가 있으면 BBC는 10년간 시간을 들여 다큐멘터리를 찍을 것이고, 생물학자들은 그걸 잡아와서 논문을 쓰려 난리가 날 것이며, 천조국 해군은 그걸 소멸시킬 무기를 만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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