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된 글입니다
[원더우먼 1984]는 전작 [원더우먼] 이후 3년만에 나온 속편이다.
주연/조연배우와 감독 등이 모두 복귀했고 전작의 캐릭터들도 사진을 통해 얼굴을 비춘다.
전작은 액션이 심심해서 수퍼 히어로 영화로서는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뚜렷한 주제의식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었다.
너무 대놓고 사랑 타령을 하고 인권 문제를 직접적으로 떠들어서 노골적이긴 했지만...
속편에선 이런 부분이 보강되기를 바랬는데, 현실은 냉정했다.
역션은 여전히 심심하고, 이제 주제의식은 오로지 대사로만 처리한다.
심지어 행동으로 보여주는 내용은 그 주제의식과 180도 반대라 대체 뭐 하는 영화인지 모르겠다.
온라인에 종종 불만으로 언급되는 내용이 번역이 구리다는 점과, 뜬금 없는 마법이냐... 는 얘기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의 문제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그분(으로 추정되는 분)의 번역이 하루이틀 그 수준[각주:1]도 아니고...
마법의 경우 원래 DC 세계관에 있는 개념이라 마법의 등장 자체는 문제가 될 수 없다.
갤 가돗은 연기력도 여전히 부족하고, 시오니스트이긴 하지만, 이 점들도 생각보다는 심각하지 않다.
원더우먼 자체가 세상을 너무 오래 산 반신이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좀 어색[각주:2]하게 행동할 수 있지...
시오니스트라는 점도 아는 사람이나 아는 거지, 대부분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폭격을 칭찬[각주:3]하는 문제엔 큰 관심도 없다.
어린이만 해도 500명 이상 희생됐지만, 그게 중요한가? 영화에서 어린이 넷만 구하면 돈도 벌고 박수도 받는데.
패티 젠킨스 감독이 직접 도너의 [수퍼맨]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복붙했다.
큰 줄기는 죄다 [수퍼맨2]인데, 대략 아래와 같은 내용들이 유사하게 등장한다.
-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하기 위해 초능력을 잃고
- 빌런은 백악관 난입해서 대통령을 마음대로 다루려고 하고
- 백악관 경비인력은 초인에게 털리고[...]
- 결국 연인을 포기하고 초능력을 되찾고
- 빌런과의 대결에서 빌런을 교묘하게 속임으로서 이겨내고
- 모든 위기는 처음으로 되돌림으로서 해결하고(극장판인 레스터 컷과 달리 도너 컷은 시간을 되돌림)
- 마지막엔 하늘을 날면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끝냄
- 힘이 없는 누군가를 동네 양아치가 패고, 힘을 가진 뒤 양아치를 역관광 시켜버리는 장면도 나옴
워너는 심지어 젠킨스 감독에게 오프닝 아마존 씬을 빼라고 요구했었는데, 그럼 그냥 [수퍼맨3]가 나왔겠네?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땐 조지 오웰을 떠올렸는데, 그런 거 1도 없다.
빅 브라더 비슷한 체계를 보여주긴 하는데, 컨셉 자체가 180도 반대다. 감시와 통제가 아니라 소통의 시스템이라니!
근데, 또 이 시스템의 성능은 뭔가 이상하다.
원더우먼과 치타의 대결에서 전력 시스템이 상당부분 파괴되는데, 그래도 전세계와의 통신에 문제도 없다!
진실의 올가미를 맥스 로드의 발에 걸었다는 것만으로 전세계 사람들과 통신도 가능하다!
사실상 제목을 [원더우먼 1986], [원더우먼 1988]로 붙였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1984년은 GPS 시스템이 처음 개발되기 시작한 때이다[각주:4].
그런 세상에서 위성으로 전세계와 소통을 하다니...
물론 영화의 오버 테크놀러지라는 건 관객이 수용해야 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같이 등장한 팔랑크스(Phalnx)는 또 1980년에 처음 나왔으니 딱 맞고...
스티브가 지하철을 보고 놀라는 장면도 다른 의미로 놀랍다.
세계 최초 지하철은 1863년 런던에, 미국 최초는 1897년에 만들어졌는데, 1차대전 참전용사가 지하철을 보고 놀란다.
그렇게나 무식한 군인이란 컨셉인가?
앞에 언급한 제목은 이 영화의 진짜 문제가 아니다.
이 영화의 진짜 문제는 계속 야부리를 털어대는 그 주제의식이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거다.
원더우먼의 행동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데, 대사는 "진실의 힘이지. 훗. 미천한 인간놈들"만 주구장창 떠들고 있다.
원더우먼이 하는 짓들이라는 게 대략 다음과 같은 개막장이다.
- 원더우먼은 다른 남자의 몸에 빙의된 스티브랑 침대에서 같이 시간을 보냄
이건 진실이고 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성범죄[각주:5]에 가까운 거임
- 그 사람의 물건들을 자기 물건처럼 손대는데 이건 그냥 절도에 가까움
- 여권이 없는 일반인 스티브를 굳이 카이로까지 끌고가기 위해 전투기[각주:6]를 훔쳐서 타고 감. 진실된 도둑질인가?
- 백악관에 들어가기 위해 동료를 속임. 원더우먼의 힘은 속임수에서 오는 거임
- 모든 것이 해결된 뒤에 눈밭 씬에서 그 남자랑 얘기를 하는데, 이거 그냥 성범죄자 컨셉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다이애나는 할 거 다 했잖아!
그에 앞서 오프닝 아마존 씬에서 어린 다이애나는 규칙을 어기고 속인다.
그게 들키자 "불공평해요!"라고 징징거리는데, 애초에 이걸 왜 진실의 문제라고 과대포장하는 건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다 들켰을 때 굳이 "진실(Truth)"이란 거창한 단어는 쓰지 않는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W. W. 제이콥스의 걸작 단편 소설의 얘기다.
여기에 무슨 신을 하나 애매하게 끼워넣긴 했는데, 대사로 계속 얘기하듯이 그냥 원숭이 발 이야기다.
얘기의 골자는 니가 원하는 소원은 이벤트 형식으로 이루어주겠지만, 그걸로 너의 서사가 붕괴될 거야다.
영화에서도 대체로는 다 소원이 들어져서 오히려 망하는 원작의 주제의식을 잘 반영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서사적으로 붕괴되지 않는다.
힘이 줄어든다는 이벤트만 발생했는데, 이 이벤트가 왜 발생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정도면 그냥 그렇게 살아도 문제 없겠는데?
이 컨셉이 이상하게 동작하는 또 하나의 내용이 미국의 ICBM 이야기다.
미국의 ICBM이 늘어나는 이벤트가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소련이 ICBM을 발사해 미국의 서사가 붕괴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ICBM 소원이 취소되자 소련의 ICBM이 폭발해버린다.
소원이 취소되는 것 자체가 원작의 컨셉이 아니기도 하지만, 왜 드림스톤에게 빌지 않은 내용도 취소가 되는 거지?
소련 ICBM은 소련 미사일 당무자가 버튼을 눌러 발사했을 건데?
사소한 내용이지만, 미네르바의 소원 중에 "쿨해졌으면"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미네르바는 아주 잠시만 쿨하고, 이후 전혀 쿨하지 않다.
주정뱅이 (예비)성범죄자를 패는 장면은, 장면 자체는 시원했는데, 너무 안 쿨해서 기시감이 들었다.
이 영화 뿐만 아니라 통상적으로 말해서, 아이들은 흔히들 생각하는 만큼 멍청하지 않다[각주:7].
그런데, 이 영화에선 초지일관 어린이들을 멍청하거나 이상하게 묘사한다.
아마존 씬을 보면 어린 다이애나는 경기의 규칙을 어기고 속이다 걸린다.
그래놓고는 "불공평하다!"고 징징거린다. 왜 그런 멍청한 소리를 하지? 누가 봐도 그게 공평한데?
강도질과 인질극이 터지는 상황에서 어린이 하나는 굳이 튀어나와 위험을 자초했다가 원더우먼과 윙크를 주고받는다.
그 윙크 한번 보여주려고 굳이 그 어린이를 멍청하게 묘사한 거다.
카이로 씬에선 군용차량들이 개떼같이 밀려들며 치고받고 싸우는데, 굳이 아이들이 차도에서 축구를 한다.
이 장면의 의미는 뭐지? "이집트 어린이들은 미국 어린이들만큼 멍청합니다" 같은 건가?
엔딩 부근 눈밭 씬에선 아이 둘이 아예 대놓고 다이애나를 노리고 눈뭉치를 집어던진다.
그걸 다이애나가 보자 "미안해용~" 이라고 말하는데, 이건 그냥 멍청한 돌아이 컨셉이잖아?
이 중 여자아이가 배우 갤 가돗의 딸이라고 하는데, 이게 대체 뭔 컨셉인지 모르겠다.
이런 멍청한 묘사 외에도 쇼핑몰씬에서 강도 하나가 굳이 "여자 어린이"를 붙잡고 인질극을 벌인다.
이런 짓 하지 않아도 이미 중범죄[각주:8]인데, 왜 굳이 이런 짓을 하지?
남성 범죄자들은 여성 범죄자들보다 더 악랄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건가?
애초에 이 영화의 설정이 미네르바는 평소에 인기... 아니, 존재감이 없는 캐릭터라고 설정되어 있다.
근데, 박사 학위를 소지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네?
학교 다닐 때부터 바빴다고 자기 입으로 얘기하며[각주:9], 심지어 윗사람(박물관장?)이 찾아서 일도 시키네?
근데 왜 본인은 "난 아무 것도 없어!!!"라고 열폭하는 건가?
그런 대사는 그런 사람이 치는 게 아니잖아? 공부할 기회가 없어 학력도 낮고 급여도 낮은 저소득층의 대사잖아?
그 대사를 대체 왜 박사 학위를 소지한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직원이 치는 거지?
이건 크리스틴 위그 배우의 연기력으로 덮어서 그렇지 그냥 어색하기 짝이 없는 설정이었다.
오프닝 아마존 씬에서 어린 다이애나는 성인보다 오히려 빠른 달리기, 수영 능력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정작 멀리서 잡은 달리기 장면을 보면 컴파스가 길거나 발이 특별히 빠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잘 달리는 어린이"(배우가 스턴트 씬을 모두 직접 수행했음)로만 보이지 성인보다 빠른 것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달리기에서 다른 선수들을 이기는 부분들이 죄다 어색하다.
게다가 그렇게 잘 달리면 말에서 떨어지자마자 활을 집어들고 말 등에 뛰어올랐어야지.
성인 원더우먼의 달리기 장면도 비슷하게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주변 화면과 뭔가 매치가 되지 않아, 마치 [쿵푸 허슬]이 연상되는 곳이 눈에 띄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다들 알다시피 1984년이다.
그리고, 이 때 클라크 켄트와 브루스 웨인은 모두 태어난 이후이다.
그런데 [배트맨 대 수퍼맨]에 와서야 배트맨과 수퍼맨은 원더우먼을 알게 되네?
원더우먼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온라인 소통 방송을 했는데도?
100년간 은둔했으나 괴물과 많이 싸워본 원더우먼은 이 분이 아니셨나?
100년 은둔 설정은 이번 영화로 그냥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잭 스나이더가 원더우먼을 (섹시 여성이 아니라) 아마존 여전사로 만들었는데, 이걸 아가리 파이터로 바꿔버렸다.
- 박물관에 전시된 전투기에 왜 카이로까지 날 수 있는 연료가 적재되어 있는가?
- 골든 아머의 용도를 모르겠음
힘이 빠졌을 때 사용하면 또 모르겠는데, 힘이 회복된 뒤에 사용함
근데, 아머는 정작 치타에게 뽀개지고, 원더우먼은 골든 아머가 없으니 가볍게 치타를 전기에 구워버림
- 스티브를 카이로로 데려가는 모든 장면이 다 이상함
스티브는 이 바닥에서 그냥 일반인인데, 굳이 카이로까지 끌고가려고 "박물관에 전시된" 전투기를 훔쳐서 데려감.
몸은 정작 다른 사람 몸인데 혹시나 죽어버리면 어쩌려고? 진실의 힘으로 살려주시려나?
- 치타가 최상위포식자라니...
지구의 최상위포식자는 호모 사피엔스라고...
맨몸으로 싸우면 니가 이기겠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결코 맨몸으로 너랑 안 싸울 건데?
전기로 지지든지 조직을 짜와서 조지든지 어떻게든 조지는게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무서운 능력인데?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 옆동네 타노스는 핑거스냅 한번 하려고 범 우주적인 난리를 떨었는데, 황수정이 있는 걸 몰랐네?
원래 원더우먼 캐릭터는 영화화가 어렵다. 약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수퍼맨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래서 크립토나이트나 붉은 태양 같은 설정이 도입된 것이다.
원더우먼은 아예 그런 설정도 없다.
이 점은 단순히 약점이 없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능력치에 대한 설정이 제대로 안 되어 있다는 게 진짜 문제다.
이번 영화에서도 이 문제는 뚜렷하게 튀어나온다.
골든 아머는 모든 전사의 힘을 모은 것이라는데, 정착 치타 발톱에 파괴되고, 원더우먼은 그냥 날개를 버려버린다.
카이로 씬도 굉장히 어색한데, 비행기 타고 갈 때는 평상복을 입고 있는데, 정작 싸울 때는 슈트를 입고 싸운다.
수퍼맨 처럼 옷 안에 숨기는 디자인도 아니고, 별도의 가방을 가져 간 것도 아닌데, 그럼 대체 어떤 설정인 거지?
아예 이번 영화에선 이런 원더우먼 설정에 더해서 드림스톤 마법의 힘에 대한 설정도 흐릿하다.
마법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가 어디이고, 그 신은 대체 누구였으며, 신의 능력은 어디까지인지도 설정되어 있지 않다.
대체 이 영화는 뭘 하자는 영화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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