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2016년에 나온 [배트맨 대 수퍼맨]은 잭 스나이더 감독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전투씬의 육중한 무게감과 별개로 주제를 표현하는 능력은 상당히 부족해보였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려 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부모의 부재에 대한 트라우마이다.
그래서 영화 오프닝부터 (이미 볼 만큼 본) 브루스 웨인의 부모 사망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또 보여준 것이다.
수퍼맨이 뜬금 없이 사망한 부친의 꿈을 꾸는 것 역시 같은 이유이다.
렉스 루터 역시 마찬가지.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복제한듯한 어설픈 루터는 시종일관 아버지 얘기만 한다.
그리고, 특히 배트맨과 수퍼맨의 갈등[각주:1]이 어머니를 통해 해소되는 걸 보여주려 한 것이다.
즉, 배트맨 입장에서는 크립톤 행성에서 온 이민자외계인에서 나와 같이 부모가 있는 닝겐으로 관점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이 시도는 많이 부족한 각본 덕분에 (심지어 확장판에서도)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닌데, 긴 시간을 들여서 엄마 이름만 주구장창 떠들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게 엄마 이름이라는 걸 얘기해주는 건 수퍼맨이 아니라 무려 NPC로이스 레인...
이 시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수많은 이유 중에 가장 최악은 바로 직전의 장면이었다.
I bet your parents taught you that you mean something.
That you're here for a reason.
네 부모는 너가 의미 있는 존재라고 가르쳐줬겠지.
지구에 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이미 지구에서 그를 길러준 부모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남는 건 마사드립 밖에 없고, 감독의 의도 따위는 크립톤 행성으로 가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20년에 개봉한 [원더우먼1984]는 이러한 주제 표현 능력이 더욱 심각한 수준이 되었다.
부족하다 못해 아예 거꾸로 달려간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려 하는 주제는 통제되지 않는 욕망의 위험함과 진실의 힘이다.
그래서 바바라 미네르바와 맥스 로드를 뭔가 결여되고 숨겨진 욕망이 있는 캐릭터로 그린 것이다.
하지만, 당장 미네르바를 보면 뭔가 결여되어 있다는 건 오로지 본인의 대사로만 나온다.
고학력자에 전문성 쩌는 스미소니언 박물관 직원으로 설정해놓고는 "난 아무것도 없다고!!!"를 외친다.
도대체 표현하고 싶은 게 지능이 없는 캐릭터인지 숨겨진 욕망이 있는 캐릭터인지 구분이 안 된다.
주인공인 원더우먼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박물관에 전시된 전투기를 훔치고, 동료를 속여 백악관에 침입한다.
심지어 남친이 타인의 몸에 빙의된 걸 알면서도 떡을 친다[각주:2].
그리고는 마지막에 몸의 주인을 다시 만나면서 성범죄자 서사를 완벽하게 그린다.
하지만, 계속 입으로 떠들어대는 주제는 "진실의 힘"이다.
DCEU 영화들의 서사 구조가 바로 직전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발끝에도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흥행에 성공한 [아쿠아맨]이 특별한 주제 없이 전통적인 영웅서사만 차용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DCEU 영화들은 과연 주제를 표현하는 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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