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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은 참으로 묘한 작품이다.

김한민 감독의 한계는 여전히 보이지만, 많은 장점들이 그 한계를 덮는 영화다.


김한민 감독의 장점은 액션이다.

[명량]에서는 자신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아예 후반부 액션[각주:1]에 한 시간 가량을 할애한다.

또한, 이 세계 해전사에 보기 드문 처절한 학살전인 명량해전을 꽤 잘 묘사했다.


드라마는 영화 전반 한 시간동안에 대부분 집중되어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쪽에서는 단점들이 여러모로 보인다.


사실상 메인 빌런에 해당하는 구루지마(류승룡 분)의 캐릭터 설명은 뭔가 부족[각주:2]하고, 배설의 행동은 불필요하게 과장되었다.

가장 소극적인 전투의 주인공 김억추[각주:3]의 캐릭터는 배역보다 배우가 더 눈에 들어와서 신경쓰이기도 했다.


전투 씬에서도 드라마가 개입되는 부분에선 비슷한 어색함이 느껴졌다.

자폭선 씬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애틋한 애정이 끼어드니 더욱 오글거렸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드라마 중에서 전투씬은 가장 박력있게 찍었다.

(개뻥이지만, 왠지 그럴싸하게 보이는) 철쇄도 등장하지 않고, 사실상 대장선 혼자 대부분 싸운 사실도 비슷하게 묘사했다.


명확한 단점들이 꽤 눈에 띄지만, 또 명확한 장점들이 그 단점들을 상쇄시키는, 묘한 영화였다.



기타 단상들 및 잡생각들…


0. 그 놈의 의리 드립은 대체 뭔지…

"식혜라도 한 사발 떠다 주랴?" 싶었음


1. 감독은 아직도 [최종병기 활]의 환상을 못 버린 듯.

활이 등장하는 많은 씬들이 오글거린다.

그리고, 다들 보란듯이 감아서 쏜다. ㅋㅋㅋㅋㅋㅋ


2. 명량해전에서 스나이퍼까지 등장하니 이건 정말 맥이 탁 풀렸다.

나올 때마다 실소를 자아냈던 캐릭터.


3. 전투 끝난 뒤의 그 대사들은 참으로 어색했는데, 이게 거의 맨 처음 쓴 대사라고…

이 대사를 왜 썼는지는 알겠는데, 훨씬 훨씬 세련된 표현이 필요하다는 생각.

이런 대사가 오히려 그 상황의 감흥을 떨어뜨렸다.


"증말 힘든 하루였구먼… 나중에 우리 후손 아그들이 우리가 이리 개고생헌 것을 알기는 알까?"

"모르면 참말로 호로자식들이제!"


4. 배의 크기나 모양은 대체로 역사적 사실과 유사하게 묘사되었다.

실제로 판옥선이 훨씬 크고 튼튼하며 충각전술도 많이 사용했다.

판옥선은 나무못을 사용하고, 왜선들은 쇠못을 사용했는데, 녹이 스는 문제 등으로 인해 내구성이 약했다.


5. 기록에 따르면 백병전은 대장선이 아니라 안위의 배에서 발생했다.

다들 도망친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 지시를 받고 제일 처음으로 온 안위인데…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6. 이순신의 배에선 사망자가 단 2명[각주:4]이었다.

사실상 전투 초반 모든 배가 뒤에 도망쳐있는 상황에서 혼자 싸웠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넘사벽의 전투대마왕이었다.


7. 사실, 배설은 그 때 죽는 게 아니라 노량해전도 다 끝난 후에 죽는다. 사인은 처형… ㄷㄷㄷㄷ

사인도 다르고, 시기도 다른데, 영화에서 보여준 큰 맥락과는 비슷하다.

살아날 길이 없다면 만들겠다고 아동바동거리다 결국 그 길 때문에 죽는다는 점.


8. 명량에서 작살난 왜군은 결국 이순신 장군의 고향인 아산에 가서 생가를 습격하고, 이 때 아들 이면이 전사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는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쩌다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는가?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 난중일기, 1597년 10월 14일


9. 사실, 명량해전 철쇄설은 <현무공실기>라는 책에 기반을 둔다.

이 책이 바로 명량해전 최고의 소극적 지휘관으로, 제일 뒤에 숨어있던 김억추를 미화하고자 후손들이 쓴 책.

영화에선 철쇄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김억추가 맨 뒤에 빠져있던 모습은 정확히 묘사했다.



  1. 바로 그 명량해전이다! [본문으로]
  2. 와키자카(조진웅 분)와의 갈등씬은 대체 왜 넣었는지 알 수가 없다. [본문으로]
  3. 바로 [살인의 추억]의 "향숙이" 백광호 역을 맡았던… [본문으로]
  4. 학살의 제왕이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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