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입원
1월 17일에 이전 포스트에 적은 것들을 가방에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수속엔 시간이 꽤 걸렸다. 입원 안내 비디오를 보면서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다인실(5인실)이 마침 없어 2인실에 들어갔는데, 방을 같이 사용하시는 분은 이미 개두수술을 하시고 회복하고 계셨다.
입원복으로 갈아입은 뒤 즐거운 마음으로 인증샷 먼저 찍어주시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전혀 모르는 천진난만한 1인
머리를 먼저 감으라면서 샴푸(…)를 주셨다.
가만 보니 액체비누에 포비든 요오드를 섞은 것.
머리를 두 번 감으라는데, 과연 뻘건 물이 흘러나오고, 머리는 뻣뻣해지는 것이 딱 그러하다…
수술 및 수술 이후에 링거를 꽂을 수 있도록 바늘도 미리 찔러뒀다.
참고로, 여기 꽂는 바늘은 금속이 아니라 부드럽게 휘어지는 플라스틱.
그래서, 움직여도 전혀 아프지는 않다.
잠시 후
밥이 나왔는데, 애석하게도
야간 사전 검사까지는 금식이라 그림의 떡이다.
게다가, 자정 이후에는 수술 때문에 금식.
즉, 사전 검사 끝나면 자정 이전에 후다닥 먹어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의 저녁식사…
이래저래 시간은 지나고 몇 가지 검사를 마치자 밤 10시가 되었다.
그 다음은 식사… 였으면 좋겠지만, 수술동의서 작성.
여기서 몇 가지 무시무시하지만,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실들을 들을 수 있었다.
1. 수술 부위가 뇌 중앙부 아래쪽이라 (당연히) 뇌를 들고 하게 되어있는데, 드는 부위는 전두엽 쪽임
- 전두엽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이성적인 판단을 주관하는 부위임
- 수술에 실수가 있을 시 사람으로서 행동하기 힘든, 상당히 치명적인 문제 발생 가능
2. 뇌를 드는 부위에는 후각신경이 지나감
- 수술 종료 후 한동안 후각이 마비되어있을 수 있음
3. 이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추천하는 이유는 워낙 위험한 곳에서 발견됐고 터질 확률은 누적된다는 것
수술동의서를 작성할 때 주치의가 약 한 시간에 걸쳐 수술에 관련된 굉장히 드라이한 사실들을 설명해줬다.
그 중에 특히 기억나는 두 가지가…
수술 후에 무통주사를 (본인이 희망하면) 맞을 수 있는데, 주성분이 모르핀과 유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예전에 모르핀 맞고 구토했던 기억이 나서 얘기를 하자 그럼 이것도 구토를 유발할 수 있다고… ㅠㅠ
물론, 그런다고 아픈 걸 마냥 감당할 생각은 없으니 무통주사 사용에 동의했다.
또, 얘기한 내용 중에 수술 실패 확률과 터질 확률을 비교하는 얘기가 있었다.
주치의: 수술 실패 확률이 조금은 있지만, 터질 확률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에 수술을 권장합니다.
나: 물론이죠. 실패 확률은 고정이고, 터질 확률은 exponential하게 누적되겠죠.
주치의: 정확히는 1년에 터질 확률을 p이라고 할 때 n년 동안 터질 확률은 1-(1-p)^n입니다.
나: 맞습니다. 터지지 않을 확률을 누적해서 다시 1에서 빼야죠.
이런 웃픈 대화를 마치고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한 뒤에야 겨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병실에선 할 수 없어서 휴게실에 있는 식사 가능한 공간을 겨우 찾아서야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입원날이 저물고 난 수술 전 마지막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