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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 Friedrich Nietzsche's Twilight of the Idols(니체, 우상의 황혼, 1888).

 

2008년 7월 27일 [다크 나이트]를 비공개 시사회[각주:1]로 본 이후 이 영화는 나에겐 올타임 넘버원 영화였다.

본상영 때는 물론 수시로 봤으며, 이후 재개봉 할 때마다 열심히 봐왔고, 이번 재개봉에서도 당연히 또 봤다.

 

이번에 받은 돌비 시네마의 굿즈, 오리지널 티켓

 

이미 수많은 극찬이 넘쳐나는 영화인데, 여기 굳이 감상기를 또 쓰는 건 과유불급이고, 그냥 생각난 것들만 정리해봄.

 

1. 자막

박빌런의 그야말로 쓰레기같은 자막이 이번에도 당연히 상영됐다.

자막을 안 보고도 100% 이해할 수 있는 수준도 됐고, 의식적으로 자막을 피해서 봤지만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박빌런의 번역 세상에서는 평양을 레이더 고도 이하로 비행하는 남한의 밀수꾼들(South Korean smugglers)은...

 

그저 레이더를 피하는 기술이 제법인 밀수꾼으로 정체가 감춰졌고,

 

아래와 같이 저런 미친 범죄를 "직업(job)"이라 언급한 조커는...

 

졸지에 운전 기사 조 기사가 되어버렸다.

운전이 천직인 소시민 조커 씨

 

2. 레이첼과 관련된 자료는 왜 태우는가

브루스 웨인이 정체를 공개하겠다고 결심한 뒤에 자료를 태우는 장면에서 폭스와 레이첼 관련 자료를 언급한다.

폭스는 물론 배트맨 장비들과의 연결점이니 당연한데 레이첼이 언급되는 건 언뜻 보면 이상하다.

 

[배트맨 비긴즈]에서의 설정상 레이첼의 엄마는 토마스/마사 웨인 집에서 집안일을 돌보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브루스 웨인과 레이첼의 연결고리가 문서의 형태로 존재했고 이는 곧 레이첼에게 위험이 될 수 있어 자료를 태운 것.

 

 

3.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주요 등장인물들

레이첼은 죽음에 임박해서야 어장관리를 중단한다.

본인의 어장관리 때문에 브루스 웨인과 하비 덴트는 더 큰 마음의 짐을 지게 됐는데 본인은 모른다.

그런데 정작 레이첼은 브루스 웨인에게 배트맨이 필요로 하지 않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을 정확하게 간파한다.

키스를 받아주면 더 엉망이 될 상황에서 굳이 키스를 받아주며 어장을 관리하는 레이첼

 

레이첼이나 하비 덴트와 달리 브루스 웨인이 스스로를 모르는 건 대사와 화면으로 정확히 언급된다.

사상 최고의 탐정 배트맨이 모르는 3가지: 레이첼의 어장 관리, 조커의 의도 그리고 자기 자신

저는 배트맨을 그만두려고 했고요, 레이첼은 저랑 결혼하려 했다니까요

 

하비 덴트는 정말로 정의감에 넘치는 지방 검사다.

미국의 법제상(그리고 영화 내용상) 덴트는 선출직 공무원이다.

그런데, 선출직 공무원이 선을 너무 세게 넘는다... 가만... 이거 많이 보던 건데...

선출직 공무원에게 동전 던지기로 헤드샷 함 맞아보실?

 

4. 아무리 봐도 봐도 또 지리는 장면들

수많은 명장면들이 쉴새 없이 펼쳐지는 영화지만 그 중 역시 조커의 경찰차 씬은 극강이다.

저 광기... 저 카리스마...

다시 한 번 고 히스 레저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울컥해지는 장면이 바로 여객선에서 죄수가 기폭장치를 버리는 장면.

이 영화는 행동 철학에 관련된 질문들만을 끊임없이 던져대는데, 이 장면에서만 답을 보여준다.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극한의 상황에서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

"나에게 기폭장치를 빼았겼다고 해. 당신이 10분 전에 했어야 할 것을 보여주지."

 

5. 얘네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조커가 갬볼을 죽일 때 똘마니들을 데려간다.

뭔가 조커 밑에서 한칼 할 것 같지만, 우린 그들의 미래를 이미 오프닝에서 봤다.

처웃지마, 니 얘기야

 

6. 뜬금 없는 CMYK

하비 덴트 후원 행사에서 브루스 웨인은 검정 슈트를 입고 3명의 여성을 끼고 들어온다.

그런데, 여성들의 옷 색상이 뭔가 많이 본 색들이다.

맨 오른쪽은 녹색 계열이지만 우리끼리 시안색으로 합의합시다...

 

세 여성은 색의 3원색인 CMY를 브루스 웨인은 K(검정)을 연상시키는 색의 옷들을 입고 있다.

 

참고로, 이 색들은 칼라 프린터 잉크에서 손쉽게 볼 수 있다.

 

7. 누가 배신자인지는 영화 초반부터 계속 알려줬음

하비 덴트는 워츠와 라미레즈가 쓰레기(scum)라고 했고, 하비가 브루스 대신 잡혀갈 때 워츠 쪽은 띠꺼운 표정을 하고 있다.

정의롭게 범죄자와 싸우는 형사들은 박수를 치고 있음

 

8. last but not least

얼마 전 리들리 스콧 옹이 다시 한 번 최근의 수퍼 히어로 영화들을 비판하셨다.

스토리는 없는데다 CGI 특수효과 떡칠로만 버틴다는 비판의 의미가 [다크 나이트]를 다시 보면서 다시 한번 공감이 갔다.

 

혹자는 수퍼 히어로 영화 피로감이라는 이상한 표현도 쓰지만 사실 관객은 영화를 못 만들어서 비난하고 안 보는 것이다.

PC 사상의 주입 때문에 수퍼 히어로 영화가 망해간다고도 하는데 나는 망해가는 영화에 PC를 주입한다고 보는 쪽이다.

그렇지 않아도 등장인물에게 시련을 부여해서 성장시키는 그림을 그릴 능력도 없어졌는데 말이다.

 

예컨데, MCU의 [이터널스]는 영화의 존재 자체를 도저히 이해 못하겠는 게, 애초에 짱짱 강한 로봇들이라 시련을 받을 게 없다.

시련이라는 게 지들끼리 내분이나 벌이는 거라 한심한데, 이 와중에 남자 배우끼리 뜬금 없는 키스질이나 하며 PC를 주입한다.

그것만으론 또 모자란지 2차대전 전범국가 대일본제국을 그 키스하는 남자 배우의 입을 통해 피해자로 워싱한다.

 

[더마블스]에선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짱짱 여성끼린 갈등도 없고 화목하게 잘 지내요[각주:2]설정 놀음이 영화의 기본 줄기다.

 

15년 전, [다크 나이트]를 같이 보던 친구들이랑 '5년은 무리고 10년 뒤엔 이걸 따라잡는 영화가 나왔으면' 했는데, 어림없다는 결론.

 

 

덧. 위에 찍은 오리지널 티켓의 전체 이미지는 아래와 같음

세번째 조커 카드는 서릴로 판사가 살해당할 때 바닥에 널브러졌던 조커 카드

 

 

  1. 전미 개봉은 7월 18일, 우리 나라 개봉은 8월 6일이었음 [본문으로]
  2.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아무 생각 없는 도다리들이라 지들끼리 그렇게 싸워댔다는 거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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