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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이건 분명히 해야 한다.

[터미네이터2]는 대단히 훌륭한 영화였고, 영화사에서 이에 필적하는 액션 영화는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주제의식과 명확한 전개 그리고, 완벽한 호흡 조절과 훌륭한 영상 기술까지 모든 면에서 최고였다.

 

 

이번에 개봉한 [다크 페이트]는 원작자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자로 돌아와서 그간의 속편들을 모두 TERMINATE 해버린 뒤 새로운 시리즈로 만든 영화다. 기존의 3~5편과 [사라 코너 연대기]는 모두 다른 타임라인(이라고 쓰고는 폐기라고 읽는다...)으로 보내버렸고, 이야기는 기존 2편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01
서세이 라니스터... 대너리스 타르가르옌... 사라 코너...

 

하지만, 이것이 기존 [터미네이터2]의 호흡이나 완성도를 그대로 이어받은 작품이란 얘기는 아니다.

서두에도 말했듯이, 그런 건 거의 불가능하고, 이건 제임스 카메론이 돌아왔다고 해도 예외일 수는 없다.

 

 

기존 시리즈에서 카일 리스 또는 T-800을 이어받은 그레이스(맥켄지 데이비스)의 연기와 액션은 만족스럽다.

전작들의 액션이 육중한 기계의 힘과 무게감이 있는 것이었던 것에 비해 이번 작품의 액션은 힘과 더불어 빠른 속도감을 함께 보여준다. 이 점에 있어서는 팀 밀러 감독의 특기가 유감 없이 발휘된다.

터미네이터 Rev-9과 백중지세의 전투력을 보여주는데, 둘의 싸우는 스타일이 다르다는 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오랜만에 사라 코너로 돌아온[각주:1] 린다 해밀턴 역시 만만찮은 모습을 보여준다.

 

Rev-9

 

그런데, 기존 시리즈에서 T-800 또는 T-1000을 이어받은 Rev-9(가브리엘 루나)부터는 뭔가 아쉽다[각주:2]. 전작의 터미네이터와는 조금 다른 능력들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사실상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화려한 액션과는 별개로 이 친구가 제 능력을 발휘하기는 하는 건지가 의심스러운 느낌이다.

더 아쉬운 것은 영화 자체의 전개가 기존 타임라인을 엎어버린다는 의지와는 다르게 너무나 기존 타임라인의 이야기들을 반복하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예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뭔가 설정이나 줄거리 흐름의 헛점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1. 도입부의 역할

 

기존 시리즈 중 폐기된 모든 작품들에서 존 코너를 영웅으로 만들거나 영웅 존 코너를 망가뜨리는 줄거리만을 반복했는데, 아마도 제임스 카메론은 이 점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도입부이다.

더불어, 이 장면은 사이버다인 타임라인이 없어지고 리전 타임라인이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2. 수은 같은 느낌에서 타르 같은 느낌으로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기존 T-1000은 수은 같은 느낌이었고, T-800의 엔도 스켈레톤은 고강도 스테인리스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리전 타임라인에서 과거로 온 Rev-9은 모든 것이 검은 색이다.

액체 금속이 아니라 탄소 구조라고 하는데, 관객 입장에선 그냥 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뀐 것 외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더 심각한 건 이 Rev-9의 성능에 대한 설명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엔도와 액체 파트가 분리 결합 되는 구조인데, 과연 엔도가 본체이고 액체가 서브인지, 그 반대인지 등등에 대한 물리적인 성능이 무엇 하나 설명되고 있지 않다.

일단 이름을 Rev-9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둘이 합쳐 한 대의 기종이라는 건 알겠는데, 딱 거기까지다.

 

 

3. 강화(Augmented) 인간의 성능은 과연 무엇인가

 

강화인간이라면 저 말씀이십니까?

 

이 문제는 그레이스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지는데, 대체 그레이스의 성능은 어디까지인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강화되었다고 하는데, 초반에 보여주는 화면은 그냥 [T4]에서 마커스 라이트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병원에서 약을 터는 장면이 나오니 뭔가 해결이 되는 느낌이 아니라 의문점만 늘어나는 것이다.

 

 

4. 배터리 어택?

 

 

앞의 2, 3의 문제와 연결되는 지점인데, 뜬금 없이 배터리 어택을 시전한다.

[T3]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는데, 그 때는 설명이라도 친절하게 했고, 덕분에 이를 [T4]에서도 써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아무런 설명 없이 배터리 어택을 시전한다.

 

 

5. 사이버다인과 리전의 터미네이터가 같은 시간대에?

 

이 영화의 영화 외적인 목적 중 하나는 사이버다인 타임라인을 폐기하고 리전 타임라인을 미래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영화의 시간대에서는 사이버다인의 T-800과 리전의 Rev-9이 동시에 등장한다.

단순히 동시에 등장하는 것 뿐만 아니라 T-800이 시간대가 바뀐다는 점을 계산해서 이를 누구에겐가 알리기까지 한다.

 

리전? 나 사이버다인 제품이야! 요즘 터미네이터는 빠져가지고 말야! 우리 때는 말야! 엉?

 

타임 패러독스 영화인데, 이 점은 너무 대충 넘어가서 힘이 빠질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인데, 이를 그다지 깔끔하게 설명하지 않고, 그냥 대충 넘어가버린다.

 

 

6. 미군의 군사력으로 달랑 한 대의 터미네이터를 파괴할 수 없을까?

 

사실 눈치를 못 챈 관객들이 많은 얘긴데, [T1], [T2]에서는 터미네이터가 군대랑 싸우지 않는다.

터미네이터는 오로지 경찰과 싸우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지금은 2019년, 21세기가 벌써 20% 가까이 지나가고 있는 세상이고, 그동안 급격하게 발달된 기술은 군사 파트에 엄청나게 적용되어왔다.

지금의 기술력을 특히, 군사력을 동원했을 때 터미네이터(T-800이든, Rev-9이든) 한 대를 파괴할 수 없을 리가 없다.

 

저 정도의 구조라면 굳이 파괴하지 않아도 외부에서 고열을 때려부으면 프로세서 고장낼 수 있음

 

아무리 살인적인 기계라고 해도, 내부에는 고정밀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들어있다.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한 고정밀 마이크로 프로세서들은 특히 열에 약하다.

그냥 화염방사기 때려부으면 설령 엔도 스켈레톤은 파괴하지 못해도, 그 안에 들어있는 CPU는 망가질 수 밖에 없다.

 

 

7. 엔딩 장면의 역할은 뭐지?

 

이 영화의 엔딩은 사실상 [T3]과 흐름을 같이 한다.

미래에 전쟁은 오기 마련이고, 그래서 제목이 [다크 페이트]이다.

이 면에서 차기작이 나온다면 [T4]의 흐름과 상당히 유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기계와의 전쟁은 확정적이고, 대사로도 이를 보여주는데, 엔딩 장면은 결코 이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오히려 [T3]보다도 힘이 빠지는 게 실망스러웠다.

 

 

8. 결론: 이는 다 어른의 사정 때문

 

[다크 페이트]에서 전작 세 편과 드라마를 지워버리는 것으로 선언했지만, 결국 이 시도는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사실 이게 지운다고 지워질 과거도 아니지만, 애초에 미래전쟁으로 가지 않으면 진도가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줄거리는 이러한 큰 틀을 유지한 채 진행해야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배우들을 보면, 상징과도 같은 T-800, 사라 코너 등이 모두 등장해야 하고, 이들은 적당히 활약하면서도 적당히 뒤로 빠져야 한다. 심지어는 T-800은 나오는 이유도 설명하기 어려운데 또 적절한 타이밍에 퇴장도 해줘야 한다.

 

이런 조건을 모두 구겨넣은 상태에선 이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여주는 게 어쩌면 아예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른다.

결국 이 영화를 정말로 지배한 것은 어른의 사정 아니었을까...

 

 

  1. 기존 [T3]에서 백혈병으로 사망처리됐고, 이 타임라인이 [T4]까지 이어졌음 [본문으로]
  2. 배우의 캐스팅 얘기 아니라 터미네이터로서의 설정 얘기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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